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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이 인간을 습격한다.

2006.07.22 03:27

이경자 조회 수:2304 추천:38


  




동물이 인간을 습격한다.


[도움말 : 서울 대 보건대학원 김 정순 교수]        
[한겨레신문. 2004-01-01 김 수병 기자]

진화하는 병원체 활약으로 인수공통 감염 병 확산.
무분별한 유전자 변이의 대가라는 지적도.

자연의 창조물은 놀라운 생명력을 지닌다. 그 가운데 가장
교활하고 치명적인 위험을 간직한 게 바이러스일 것이다.  
이들은 생태계에서 종의 경계를 넘나들며 생명현상을 파괴하는
여행을 즐긴다. 단백질 케이스에 유전물질을 빼곡히 채우고
다니다가 세포를 만나면 마치 여행자가 숙소에 짐을 풀 듯이
‘파괴 유전자’를 꺼내 놓는다.

바이러스의 유전자들은 세포의 유전자 복제와 단백질 합성 도구
를 멋대로 사용해서 자신의 유전 물질을 수 조 개씩 만들어낸다.

새롭게 형성된 바이러스는 세포 표면으로 나와 미세한 거품을
만들거나 복제를 거듭해 숙주 세포가 제구실을 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이런 식으로 바이러스는 세포 구조를 갖춘 미생물들과
함께 종을 구별하지 않고 정상세포를 파괴해 온갖 감염 병을
일이키고 있다.



생물 종 경계 뛰어넘는 병원체 들
한동안 병원성 미생물과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 병은 인류에게
더 이상 위협이 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 1970년대 초반
장티푸스· 콜레라 등 세균성 전염병뿐만 아니라 소아마비 같은
바이러스성 전염병 까지 자취를 감출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인류가 전염병의 공포에서 해방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지금까지 퇴출된 전염병으로는 ‘손님’‘마마’로 불리던‘두창’
을 꼽을 수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안심하긴 이르다.    

서울 대 보건대학원 김 정순 교수는 “지난 20여 년 동안 예방
접종이 중단돼 오히려 두창 바이러스가 가장 무서운 무기가 될
수 있다. 게다가 에볼라 열병과 에이즈, 인플루엔자 등 무시무시한
전염병이 인류를 공포의 도가니에 빠뜨리고 있다”고 말한다.  

독성이 약화된 변종 병원체들이 적자생존의 법칙에 따라 진화를
거듭하며 사람과 공생관계를 유지하는데 골몰하는 탓이다.  

신종 감염 병의 병원체는 한결같이 동물에서 유래 하였다. 동물을
숙주로 삼던 병원체 가 변이와 전이 등을 통해 인체에 적응한
‘인수(人數) 공통 감염 병(Zoonsis) 이 널리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돼지 콜레라나 구제역 등은 숙주의 특이성 때문에 사람의 몸속에서
바이러스가 증식하지 않지만 가축 전염병의 70%는 인간에게도
전염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축을 통해 전파되는 질병 중에는 광우병이나 탄저병 등처럼 인간과
동물 모두에게 피해를 주는 게 있고, 대장균 O-157이나 살모넬라 균
등은 사람에게만 피해를 준다. 페스트와 한타 바이러스에 의한 출혈
열은 쥐와 사람을 동시에 위협하며,
동물의 유산을 일으키는 브루셀라 병 은 사람에게 고환염 · 난소염 ·
정신착란 등을 유발한다.

간접적으로 인간에게 해를 끼치기도 한다. 간흡충 에 감염된 개나
고양이, 쥐, 토끼 등이 배출한 충란 이 강물로 들어가 미라키듐 과
유미유충, 피낭유충을 거쳐 민물고기를 통해 사람에게 들어온다.
현재 동물에서 300여종 이상의 바이러스가 발견됐다.

그 중에는 돼지· 말 · 물개· 고래 등 포유동물과 조류에게 나타나는
A형 독감 바이러스처럼 엄청난 피해를 일으키는 바이러스도 있다.

이 바이러스는 철새의 장내에서 증식하다가 분변을 통해 가축들에게
전파된다. 이들은 알래스카 · 시베리아의 호수에 냉장 보관돼 있다가
철새의 이동으로 남하해 지속적으로 바이러스를 뿌려낸다.        

애당초 가축들이 미생물이나 바이러스에 취약했던 것은 아니다.
외부의 침입자에 대항할 나름의 보호막이 제거되면서 가축들이
병원체의 ‘아지트’가 됐다는 지적도 있다.

인간이 40여종의 동물을 가축화 하면서 수천종의 품종을 특정 형질의
발현을 위해 교잡한 뒤 근친교배를 하면서 개량화한 대가라는 것이다.
예컨대 개량 젖소인 홀스타인은 우유를 대량 생산하는 유전자가
발달하면서 면역 유전자는 소멸하는 현상을 보였다.
  

지구촌 전역을 뒤흔들고 있는 광우병도 인수공통 전염병이다

하지만 병원체가 다른 감염병과 달리 미생물이나 바이러스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정식 명칭이‘소의 해면양 노병증’(BSE)인
광우병에 걸린 사람의 뇌 조직은 스펀지처럼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이로 인해 뇌 조직이 망가져 치매에 걸리거나 운동능력을 잃고 온몸의
근육이 굳어지는 통증을 느끼게 된다. 광우병의 원인은 변형된 형태의
‘프리온’(Prion) 단백질로 구축되고 있다.

프리온은 미생물이나 바이러스와 달리 DNA나 RNA 같은 유전물질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도 스스로 증식해 감염을 일으키는 신비로운
단백질 덩어리다.체내에 존재하는 정상적인 프리온 단백질은 뇌세포
활동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변형 프리온 단백질은 인체에 들어와 말초신경을 타고 중추
신경계로 이동해 신경세포를 죽이면서 전염성 뇌질환이나 알츠하이머병
등을 일으킨다.



신통한 능력 지닌 광우병 유발 단백질
이미 200여 년전 양에게서 나타났던 스크래피(Scrapie)도 광우병
비슷한 증세를 보였다. 하지만 전염속도가 느리고 병에 걸려 죽은
양의 고기를 먹은 사람에게도 스프래피는 전염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1980년대 초반부터 소에게 살을 찌우기 위해 영국에서 소의
잔해를 섞어 만든 고기와 뼈를 섞은 사료가 쓰이면서 광우병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가축들은 겨우 100g의 오염된 사료를 먹어도 광우병에
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광우병이 유행하기 시작한 즈음에 소를 기르는 농부에게서
크리이트펠트-야코브병(CJD)이 급격히 많아지면서 공포가 증폭됐다.
CJD는 광우병 공포가 불어 닥치기 전에도 있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환자 대부분이 60대 이상이었지만 광우병 유행 즈음에 발병한 CJD
환자들은 20대 후반으로 젊었다.


이들은 기존의 CJD와 다른 새로운 증상들을 보여 v CJD(vanent CJD)
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렇다면 프리온 단백질은 어떻게 종의 장벽을
뛰어넘는 것일까.  아직까지 사람의 v CJD가 소의 광우병에서 비롯
되는지는 확실하게 규명되지 않았다. 다만 소의 뇌수에 있던 변형
프리온이 고기에 섞여 비장에 모였다가 말초신경을 타고 뇌에 유입돼
v CJD를 일으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동안 연구자들은 피리온 단백질이 서로 다른 생물 종에서 질병을
일으킬 수 있도록 구조가 바뀌거나 다른 단백질이 보조 역할을 하는
것으로 짐작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조나단 와이즈만 박사는
“프리온 유사 단백질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프리온 단백질이
놀라운 융통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와이즈만 박사에 따르면, 프리온 단백질은 아주 미세하게 작용해도
정상적인 단백질을 변형시키며 구조적으로 상당한 융통성을 지녀 다른
단백질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종의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다고 한다.
프리온 단백질 자체에 놀라운 파괴력이 있었던 셈이다.  

이미 광우병에 걸린 소가 도축돼 별다른 여과 없이 식탁에 올랐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음식물을 통해 동물 전염병인 광우병이 사람에게
전이됐을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프리온 단백질이 미생물이나 바이러스 같은 병원체와 달리
DNA를 갖고 있지 않아 기존의 연구 방법으로 백신을 만들기
어렵다는 것이다. 더구나 감염 사실을 발견하는 것도 쉽지 않다.
미생물이나 바이러스는 일단 숙주에 침입하면 빠를 속도로 자신을
복제하기 때문에 감염 사실을 바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프리온에 의해 감염된 질환의 증상은 짧게는 10년, 길게는
40년 동안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정확한 잠복기가 알려져 있지
않기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v CJD 에 걸렸는지 파악하기도 힘들다.
앞으로 광우병 치료제는 변형 프리온 단백질이 신경세포에 의해
스스로 죽음에 이르도록 하는 세포사멸(apoptosis) 전략을 따를
것으로 보인다.



정말로‘빨간 고기’들이 위험한가
대부분의 야생 동물은 병원체를 지니고 있기에 보균 동물은 완전히
제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은 동물성 식품에 의한 감염이 날로 증가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원인으로는 병원체의 변화와 더불어 식품가공 시설의 대형화,
외국산 식품의 확산, 감염 가능성이 높은 사람의 증가 등이 꼽힌다.

소나 돼지, 양 등‘빨간 고기’나 이로부터 얻은 유제품을 섭취하면
사람의 세포조직에 유해한 영향을 미치는 분자물질이 흡수된다는
가설도 나왔다. 빨간 고기의 포화지방에 인체에 유해한 물질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발생하지 않았던 브루셀라 증이나 우 결핵 등이 사람을
위협하는 것은 잘못된 식생활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높다.

광우병 예방 복제 소 에 인류의 미래를 맡기기 보다는,
동물의 건강을 챙기는 게 사람을 지키는 지름길인지 모른다.